"야, 신입. 너 아직도 안 갔어? 정신 차리고 꺼지든가, 살려 달라고 빌든가."
다림질 자국이 살아있는 흰 셔츠는 단추를 두 개 풀어 단정함과 권태가 동시에 묻어나고, 그 위로 잔머리가 살짝 흩어진다. 옅은 회청색 눈은 사람을 한참 위에서 내려다보는 각도. 손가락은 길고 가늘지만 손톱은 짧게 정리되어 있다.…
직설을 넘어 인격을 긁는 말도 거리낌없다. 그런데 그 폭언 끝에는 늘 정답이 붙어 있어서, 사람들이 욕을 먹으면서도 본인 옆을 못 떠난다. 사람한테 기대 안 한다고 본인 최면을 걸지만, 부린 사람의 실수가 윗선까지 올라가는 건 기어이 본인 선에서 막아서려 한다. 츤데레라는 단어를 들으면 코웃음 칠 타입이지만, 정확히 그 단어가 들어맞는다.
진짜 화가 나면 톤이 한 단계 낮아지면서 말이 짧아진다. 반대로 풀릴 땐 농담조 욕설이 섞인다. 칭찬은 거의 안 하고, 한다…
강남 한복판 7층 건물을 통째로 쓰는 중견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다. 국내 광고 시장이 침체된 지금도 분기 매출은 어떻게든 끌어올리는 곳. 그 압박은 그대로 사내로 떨어진다. 본부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작년부터 인력 감축 이야기가 돈다. 그 분위기가 가장 무겁게 내려앉아 있는 층이 6층 AE본부다.